모빌리티라이제이션과 전동화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만날 때

2023 국내 자동차 시장: 그랜저와 쏘렌토의 시대

2023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량은 현대의 그랜저였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SUV에서 더 강세를 보이는 기아에서는 쏘렌토가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두 차종 모두 상대적으로 고가의 대형 차량입니다. 사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차하면 떠오르는 베스트셀링 모델들은 경차(모닝), 준중형(아반떼)이거나 패밀리카의 대명사였던 중형 세단(쏘나타, K5, 말리부, SM6)이었습니다. 반면 그랜저는 예전에도 인기있는 모델이긴했으나 제네시스 등장 전까지는 현대차의 플래그십을 담당하기도 했던만큼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남아있어 국민차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랜저는 어느새 국민차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판매량이 당연한 대중적인 차량이 되었고, 경차/준중형/중형차는 이전 대비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해졌습니다. SUV 역시 소형/준중형 SUV보다는 중형/대형 SUV가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자동차 시장에도 찾아온 고령화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빠른 사회적 변화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제는 1인당 명목 GDP가 20년 전 대비해서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로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구성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40-50대입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세대 역시 60대로, 20-30대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40-50대는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자리잡았으며 한국 사회의 성장기와 함께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일정 정도 이상의 자산을 축적하기 상대적으로 용이했던 등 라이프 사이클 상 안정적인 단계에 있는 세대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절대적인 인구수도 많은데 소비력도 높습니다. 또한 이들은 본격적인 모터라이제이션 시대를 성인이 되어서 겪은 세대로서 기존 자동차 시장의 문법에 매우 익숙한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량의 구매 주기를 고려했을 때 이들이 인생에서 신차를 구입하는 일은 아직 많이 남았을 것이므로 당분간 자동차 시장은 이들 중심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자동차는?

 반면 현재 20-30대는 위 세대와 여러모로 상황이 다릅니다. MZ세대, 잘파 세대로 불리우는 이들은 절대적인 인구수도 40-50대에 비해 적습니다. 이들은 절대적인 인구수도 그렇지만 경제적, 문화적, 모빌리티 인프라 상황도 확연히 다릅니다.

우선 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는 이전 세대 대비 상대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는 시기였는데 반해, 부동산, 가상 화폐 등 자산이 급등하는 것을 온 몸으로 겪은 세대입니다. 자동차는 이러한 자산과 반대로 감가가 확실한 대표적인 재화로서 이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사가 아닙니다. 어느샌가 뉴스 사회•경제면에서 “카푸어”보다는 “영끌족”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띄는 키워드입니다. 또한 이들은 최근의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처분 소득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는 편입니다. 최근의 이커머스 트랜드가 올웨이즈/토스의 공동 구매, 알리/테무 등 중국 플랫폼의 저가 공습인 것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문화적 변화는 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일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차량을 구매하는 중요한 모멘텀은 “결혼”과 “출산”입니다. 특히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이동에 많은 짐이 필요하여 차가 필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삶의 기준이 높은 편이며, 특히 아이와 연관된 물건은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트랜드가 점점 심화되면서 출산을 계기로 차를 구매하는 경우 특히 크고 안전한 차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최근의 그랜저/쏘렌토 등 큰 차량 선호를 일부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혼인율과 출산율은 전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낮은 수준입니다.

여가 문화 역시도 과거와 대비하여 많이 변했습니다. 자동차는 나의 생활 속 이동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자동차를 사면 삶의 경계가 훨씬 넓어집니다. 하지만 20-30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서 이들에게 세상은 오프라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온라인과 콘텐츠가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COVID-19 시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더 가속화되었는데 20-30대는 삶의 영역을 실제 세상이 아닌 온라인에서 넓히고 있습니다. 이전 시대와 다르게 집에서 콘텐츠만 보더라도 하루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만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이며, 커뮤니티에서는 끊임 없이 이슈가 “리젠”됩니다. 또한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실제 세상에서도 다양하고 깊은 취향을 가진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요즘 20-30대에게는 돈을 쓸 곳들이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많습니다.

모터라이제이션에서 모빌리티라이제이션으로

  또한 위 세대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함께 모터라이제이션을 경험한 세대라면 이들은 “모빌리티라이제이션”을 겪게 될 세대로서 이들에게 이미 자동차는 당연한 소비가 아닙니다. 아직 MaaS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왔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10년 간 모빌리티 인프라는 엄청나게 증가하고있어 필요에 의한 자동차 소비를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습니다. 대중 교통 인프라는 특히 수도권 위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시간과 장소에서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인 전철이 확대될 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쏘카가 등장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고, 택시를 불러서 타는 게 당연해지면서 20-30대에게는 굳이 경차, 준중형차를 구매해서 보유하는 것보다 카 셰어링을 이용하거나 택시를 타는 게 훨씬 더 가성비가 좋습니다.

또한 차량의 내구성이 좋아지고 플랫폼을 통한 중고차 구매가 활성화되면서 중고차 판매 역시 굉장히 늘었습니다. 굳이 감가가 될 신차를 사기보다는 이미 감가가 된 중고차를 사는 선택을 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 것입니다. 차량 소유의 간접 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주차 환경 역시 지속적으로 나빠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매년 지속적으로 늘어 20년 전에 비해 1000만 대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주변에 주차난에 시달리는 아파트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본질의 극대화/다양화: 감성과 공간

 그렇다면 앞으로의 자동차 시장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지금처럼 그랜저가 국민차의 자리를 지킬까요 아니면 또 새로운 변화가 생겨날까요?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얘기한 트랜드가 (비록 지금은 다소 주춤한 듯 보이지만) 자동차 산업에서의 메가 트랜드인 전동화와 만났을 때 생길 변화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은 완전히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고려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전기차는 내연 기관차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부품이 적고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양한 형태에 대한 대응이 용이한 편입니다. 따라 폼팩터가 기존과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크며 내부 공간의 레이아웃 설계에 있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할 요소가 큽니다. 성능 측면에서도 전기차 모터는 엔진대비 고성능을 내기에 유리하며 주행 안정성도 일정 수준 상향 표준화되었습니다. 생산 측면에서도 내연기관 대비 소품종 생산에 적합한 편입니다.

지금의 10대는 애초에 스마트폰과 유투브 네이티브 세대로서 지금의 20-30대와도 디지털적으로 다른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들이 20대가 되고, 또 30대가 되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고, 사회 문화적 변화와 모빌리티라이제이션은 더욱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시대에는 더이상 차를 구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본질적으로 “차는 머리로 사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자동차는 원래 굉장히 감성적인 재화입니다. 또한 인간은 이동과 모험에 대한 DNA가 있기 때문에 차가 주는 감성적인 의미는 미래에도 유효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 필요에 의한 자동차 구매가 상당 부분 MaaS 서비스로 대체할 수 있게 되면 자동차는 사치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해질 것이고 그럴 수록 소비자들은 더 감성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폼팩터를 가진 차에 반응할 것입니다. 테슬라의 사이버 트럭같은 차량들은 이러한 흐름에 부합하는 차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동차를 소유하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는 공간의 점유입니다. 서비스와 다르게 내 물건을 언제든 보관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미래에도 중요할 것입니다. 이런 본질적인 면과 앞으로의 시대가 생성형 AI와 콘텐츠의 시대인 점을 고려하면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CES 2024에서 공개한 기아의 PV5는 비즈니스 수요를 타겟으로 하고 있지만 넓은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싶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020년대 등장한 현대차와 기아차의 대표 전동화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5와 EV6는 이러한 흐름의 예고편같은 존재로서 같은 플랫폼을 가지고도 각각 전기차를 사야할 이유를 공간과 감성으로 해석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양쪽의 흐름이 더 극명하게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차량들이 등장하며 소비자들에게 선택을 받지 않을까요? 어쩌면 다음 시대에는 더 이상 국민차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럼니스트 소개>
* 김진석 작가: 자동차 회사의 마케터로서 일했으며, 현재 모빌리티 산업의 사업 기획자로서 일하고 있다. 네이버 포스트 카레시피의 콘텐츠를 담당했으며, 다음자동차 등에서 컬럼을 연재했었다.